뿌리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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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군

오산군

공의 휘는 주()이고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이신 임영대군(諱 구)의 장자이시며, 선비는 증 우의정 전주 최승령의 따님으로서 제안부부인이시다. 5자를 낳으시니 장자가 공이고, 2자가 귀성군 준()이고, 3자가 정양군 순()이고, 4자가 팔계군 정()이고, 5자가 환성군 징()이다. 계비이신 부부인 안동안씨께서는 또한 4자를 낳으시니 장자가 영양군 함() 이고, 2자가 단계부정 인()이고, 3자가 윤산군 탁()이고, 4자가 옥천군 옥()이니 모두 공의 아우가 된다.


공이 세종 19(1437) 정사년에 출생하시니 친 왕손으로서 궁중에서 자랄 때 세종께서 크게 총애하시었다. 세종 26(1444)년 갑자에 공의 나이 8세 때 정의대부 오산군에 봉작되시었다. 그 후 여러 번 벼슬이 올라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공은 타고난 자질이 영매하고 경사를 모두 익혔으며, 단중하면서도 초현하고 청명하면서도 강직하시니, 만약 정치에 나아갔으면 임금을 보필하고 백성을 윤택케 하심이 또한 무엇이 어려웠을 것인가? 그러나 종친된 분수를 지켜 덕을 쌓으면서 안정하시니, 그 처사가 심원한지라 세조께서는 수시로 공을 불러 자문도 하시고, 또한 연회도 베풀면서 은총의 두터움이 마치 친자와 같이하였다. 그 후 성종 때에 이르러 문소전과 사옹원의 제조가 되심에 직책에 온 마음을 기울여 차질이 없게 하셨다.


공이 창령성씨인 찬성 성임의 따님인 풍기군부인에게 장가를 들어 2녀를 낳으시니, 장녀는 사용 노윤광에게 출가하였고, 2녀는 생원 안만복에게 출가하였다. 군부인 성씨의 묘는 공의 묘가 있는 좌강 건좌에 있다. 또한 풍기군부인 연안김씨를 계취하여 7남을 낳으시니, 장자가 창평수 근(昌平守 瑾)이고, 2자가 희제정 호(豨蹄正 瑚)이고, 3자가 적천수 연(赤川守 璉)이고 4자가 홍양수 완(洪陽守 玩) 이고, 5자가 덕안도정 진(德安都正 珍)이고, 6자가 엄천수 거(嚴川守
)이고, 7자가 온천수 진(溫川守 璡)이다. 군부인 김씨의 묘는 공의 묘 좌강 임좌에 있다.


공이 성종 21(경술) 8월 초2(임오)에 침제에서 졸하시니 그 때 나이 54세였다. 공이 졸하심에 성종께서 심히 슬퍼하시면서 조회를 거두시고, 부의를 내리셨다. 이어서 관원을 보내어 조제를 하고 또한 도봉 방학의 언덕에 예장을 베풀었다. 공에게 정목(靖穆)이라 시호를 내리니, ‘靖’은 몸을 바르게 하고 말을 곱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요, ‘穆’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용모를 살펴봄을 뜻함이다,